Skip to Content

1학기 성적표, 받기 전에 내가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들

슬기로운 초등교육

1학기 성적표가 오기 전, 솔직히 나는 아이보다 내가 더 두근거린다.

잘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인데, 정작 잘 못 받으면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성적표를 펼쳐놓고 리액션이 나오는 대로 했던 것 같다. “이건 왜 이래?” 같은 말이 먼저 나왔던 날도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성적표가 오기 전에 먼저 좀 생각해보기로 했다.

초등 1학기 성적표, 지금은 어떤 형식인가

일단 요즘 통지표가 예전이랑 많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우·미·양·가 같은 등급이 아니라, ‘매우잘함’, ‘잘함’, ‘보통’, ‘노력요함’ 4단계에 선생님이 직접 쓴 서술형 문장이 함께 나온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성취기준 중심 과정 평가가 더 강화됐다고 한다.

예전에 통지표 해석 때문에 맘카페가 들썩였던 게 생각난다. 선생님이 쓰신 한 문장을 두고 “이게 칭찬이야, 지적이야?” 하고 해석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나도 그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근데 이 형식의 변화가 의미하는 건 사실 간단하다. 숫자 하나로 아이를 줄 세우는 대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겠다는 거다. 그러면 성적표를 읽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초등 통지표 형식

성적표를 받자마자 하면 안 되는 것들

직접 해봤더니 알겠더라. 성적표를 받은 직후가 제일 위험하다.

비난은 당연히 안 된다. “왜 이것밖에 못 받았어”는 아이한테 수치심을 주는 말이다. 그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건 비교도 비슷하게 나쁘다는 거였다. “○○는 더 잘 받던데”는 아이 자존감을 긁는 게 아니라 아예 긁어 버리는 수준이라고.

그리고 또 하나. 성적표를 보자마자 “그래, 이 과목 학원 알아봐야겠다”며 즉각 조치를 취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성적이 나쁘면 바로 벌이 오는구나,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고. 그게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는 걸 읽고 머리를 한 번 띵 맞은 기분이었다.

성적이 떨어진 아이에게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를 쓴 이임숙 선생님 글에서 봤던 대목인데, 잔소리가 시작되면 아이 뇌는 부정적인 감정을 인식하는 부분만 활성화되고 부모 말을 이해하는 기능은 사실상 꺼진다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설명했는데 아이가 멍하니 있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성적표 반응 비교

성적표를 보고 나누는 말의 순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나온 연구에서 확인된 바로는, 부모의 성취압력은 아이 삶의 만족도에 직접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반면 긍정적인 학습관여, 그러니까 과정에 관심 갖고 노력을 지지하는 방식은 아이 심리적 안녕감과 연결된다고.

그게 이론적으로는 알겠는데, 막상 성적표 앞에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가 잘 안 그려졌다.

찾아봤더니 단계가 있더라.

일단 기다린다. 성적표 받자마자 반응하지 않는다. 아이도, 나도 감정이 올라와 있는 상태니까. 잠깐 뜸을 들이는 게 맞다.

그다음 아이한테 먼저 묻는다. “이번 결과 어때? 스스로는 어떤 것 같아?” 내 평가보다 아이 생각이 먼저다.

그리고 같이 읽는다. 선생님이 쓰신 서술 내용을 함께 보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쓰셨네, 어떤 상황이었어?” 하고. 성적표를 심판 결과지로 보는 게 아니라 학교생활 보고서로 읽는 느낌으로.

마지막엔 과정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 단원 어렵지 않았어?”, “다음 학기에 한 가지만 달리 해본다면 뭐가 있을까?” 같은 식으로. 결과 말고 앞으로를 보는 방향으로.

스탠퍼드대 Carol Dweck 교수의 성장 마인드셋 연구에서 강조하는 피드백 방식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과나 재능에 대한 칭찬보다 과정과 노력에 대한 피드백이 아이 학습 태도에 훨씬 오래 남는다는 거다.

이런 말은 피한다 이렇게 바꿔보면
“역시 수학은 네 약점이야” “이 단원, 어느 부분이 제일 헷갈렸어?”
“이 정도 받으면 어떡해” “이번에 열심히 했던 거 뭐가 있었어?”
“○○는 더 잘 받던데” “네가 느끼기에는 어떤 것 같아?”
“똑똑한 애가 왜 이래” “지난번보다 집중한 거 엄마는 봤는데”

성적보다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

방학 전 한 가지 더 챙겨보기로 했다. 성적 수치보다 실태 파악이 먼저다.

어떤 과목에서 자신 있어했는지, 어느 단원이 어려웠는지, 수업 참여나 태도는 어땠는지. 성적표 숫자보다 이걸 먼저 알아야 다음 학기를 뭘 어떻게 할지 감이 잡힌다.

아이스크림 홈런 1학기 학습 점검 가이드에서 본 방식인데, 방학 전에 1학기 교과서를 같이 훑으며 “이거 기억나?” 하고 물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틀린 단원을 찾는 게 아니라 어느 부분이 남아 있고 어느 부분이 빠졌는지를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하는 것. 강제가 아니라 같이 살펴보는 경험으로.

담임 선생님께 방학 전 짧은 상담을 요청해 통지표 내용에 대한 배경을 여쭤보는 것도 괜찮다고 하더라. 서술형 문장 한 줄에 뭐가 담겨 있는지는 선생님만 알 수 있으니까.

방학 전 점검 포인트

이렇게 정리해두고 나니까 좀 덜 두근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성적표가 오면 내가 어떻게 할지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이가 어떤 말을 들으면 좋을지 먼저 생각해두는 것. 그게 시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