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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자기주도학습, 방학에 손을 떼봤더니 알게 된 것

슬기로운 초등교육

방학 첫 주에 나는 여전히 아이 옆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문제집 한 장 넘어갈 때마다 “여기 다시 봐”, “이건 아까 배운 거잖아” 하고 훈수를 뒀고, 아이가 “엄마 이거 어떻게 해” 하면 3초도 안 돼서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게 도와주는 건 줄 알았다.

아니었다. 며칠 지나서 다시 보니 그게 문제였다. 아이는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풀어볼 생각을 안 하고 바로 나를 쳐다봤다. 초등 자기주도학습이라는 게 “혼자 알아서 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정작 나는 아이가 혼자 해볼 틈 자체를 안 주고 있었던 거다. 방학이라 학교 시간표도 없겠다, 며칠은 그냥 옆에서 손을 좀 떼보기로 했다.

혼자 두는 게 자기주도는 아니더라

손을 뗀 첫날은 솔직히 좀 불안했다. 내가 안 봐주면 그냥 안 할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문제집을 펴놓고 10분을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다 스스로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쓰는 걸 봤다. 틀린 걸 혼자 알아챈 거다. 옆에서 다 챙길 땐 한 번도 못 보던 장면이었다.

찾아보니 이 부분에서 내가 단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칼럼(21erick)에서는 초등학생한테는 ‘자기주도학습’보다 ‘자기조절학습’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짚는다. 이 시기엔 주의·감정·행동을 스스로 조절하는 게 중요한데, ‘자기주도’라는 말이 자꾸 ‘혼자서 하는 학습’으로 오해를 부른다는 거다. 그러니까 아이를 방에 혼자 밀어 넣는 게 자기주도가 아니라, 옆에 있되 개입하는 방식을 바꾸는 거였다.

읽고 나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손을 뗀다는 게 방치가 아니라는 뜻이니까. 나는 안 봐주면 죄책감이 들었는데, 봐주는 방식이 문제였던 거지 봐주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었다.

도움을 줄여가는 방학 공부 순서

다 챙겨주던 손을 조금씩 뗀다는 것

그래서 방식을 바꿔봤다. 아이가 “이거 어떻게 해” 하면 바로 답하지 않고 “너는 어디까지 해봤어?”라고 되물었다. 처음엔 아이도 나도 어색했다. 답을 아는데 안 알려주는 게 이렇게 입이 근질거리는 일인 줄 몰랐다.

이걸 비고츠키의 스캐폴딩(비계)이라고 부른다더라. 건물 지을 때 비계 세워두고 다 지으면 걷어내듯, 학습 초기엔 어른이 많이 도와주다가 아이가 해낼 수 있게 되면 도움을 ‘제때’ 걷어내는 게 핵심이라는 거다. 비계는 과제를 쉽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도움의 ‘양’을 조절하는 거라고 한다. 딱 내가 방학에 해보려던 그거였다. 다 챙겨주다가 손을 조금씩 떼는 것.

그런데 이건 학년마다 정도가 다르다. 비고츠키는 자기조절에 순서가 있다고 봤는데, 저학년은 어른이 옆에서 함께 조절해주는 시기, 고학년으로 갈수록 스스로 정하고 지키는 시기로 넘어간다. 우리 아이는 3학년이라 딱 그 중간, 규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즈음이다. 그래서 다 맡기지도, 다 챙기지도 않는 절반쯤의 손 떼기가 맞는 시기였다. 저학년 아이한테 완전한 자기주도를 기대하는 건 발달상 무리라니, 조급해할 일은 아니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제일 어려운 건 오답을 대하는 순간이었다. 예전 같으면 틀린 문제에 바로 빨간 표시를 하고 “이거 왜 이렇게 했어” 했을 거다. 이번엔 “어디서 헷갈렸을까, 같이 볼까?”로 바꿔봤다. 아이가 “아, 여기서 곱하기를 더하기로 봤어” 하고 스스로 찾아냈을 때, 내가 표시해줬으면 절대 안 나왔을 말이라는 걸 알았다.

이게 그냥 기분 문제만은 아닌 게, 초등학생 대상 국내 연구를 보면 자기 학습을 스스로 점검·조절하는 ‘자기평가력’과 스스로 선택하고 확인하는 ‘독립성’이 학업성취를 유의하게 설명하는 변인으로 나온다. 6학년 대상 연구(HLM 분석)에서는 메타인지와 노력조절이 국어·수학 성취를 예측했다. 결국 스스로 점검하는 힘이 성적하고도 연결된다는 얘기다.

동기 쪽 원리도 비슷하다. 사람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 채워질 때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자기결정성이론이 있는데, 부모가 선택권을 주고 결과가 아니라 노력이나 방법을 인정할 때 아이의 ‘스스로 하려는 힘’이 자란다는 거다. 그러니까 “왜 틀렸어”보다 “어떻게 풀었어”가 나은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나는 늘 정답 맞았는지만 봤는데, 그게 오히려 아이를 결과만 좇게 만들고 있었나 싶었다.

혼자 점검할 때 자라는 학습 힘

습관이 붙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방학 2주째, 여전히 어떤 날은 스스로 하고 어떤 날은 멍때린다. 처음엔 “3주 했는데 왜 아직 안 붙지” 싶어 조급했다. 그런데 습관 형성 연구(Lally et al.)를 보면 행동이 자동화되는 데 평균 66일, 사람에 따라 18일부터 254일까지 걸린다더라. 흔히 말하는 21일은 초기 저항을 넘기는 구간일 뿐이었다. 방학 한 달로 다 될 일이 아니었던 거다.

이걸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오늘 아이가 스스로 문제집을 편 것, 틀린 걸 혼자 지운 것, “이건 내가 해볼게” 한 마디, 그런 잔잔바리들이 쌓이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계획표를 완벽하게 지키는 것보다 이런 태도가 먼저라는 건 방학 루틴을 계획표 대신 다르게 정했던 이야기를 쓰면서도 느꼈던 거였다.

오늘도 아이는 문제집을 펴놓고 반은 멍때리고 있다. 그래도 이제 나는 옆에서 답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입이 근질거리면 물을 한 잔 뜨러 간다. 그거면 이번 방학은 됐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