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단원평가 있는 날 저녁이면 식탁에 문제집을 쫙 펼쳐놓는 사람이었다. 내일 수학 단원평가란다, 하면 그날 밤에 그 단원 문제집을 한 권 몰아서 풀렸다. 아이는 하품하면서 풀고, 나는 옆에서 채점하고.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점수는 그럭저럭 나왔으니까 이게 초등 단원평가 공부법인 줄 알았다.
근데 며칠 지나서 같은 유형 문제를 다시 내밀면 아이가 멀뚱멀뚱했다. 분명 그저께 다 맞힌 건데. 그 표정을 몇 번 보고 나서야, 아 이거 뭔가 잘못 굴러가고 있구나 싶었다.
시험은 없어졌다더니 시험은 보더라
처음엔 좀 헷갈렸다. 요즘 초등은 중간·기말고사가 없다고 들었는데 웬 시험. 찾아보니 2017년쯤부터 대부분 학교에서 정기고사가 사라지고 단원평가·수시평가로 바뀌었단다. 한 단원 끝날 때마다 그 단원 이해했나 확인하는 거라, 교과서 개념하고 문제 위주로 나온다.
문제는 이게 미리 공지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담임 선생님 재량이라 어느 날 갑자기 보기도 한다. 그러니 “내일 시험이니까 오늘 밤에 몰아서” 라는 나의 벼락치기 작전은 애초에 성립이 안 될 때가 있었던 거다. 시험 날짜를 몰라서 준비를 못 한 날, 아이가 그냥 손 놓고 온 걸 보고 좀 허탈했다. 학교나 선생님마다 빈도도 공지 방식도 제각각이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시험 날이 아니라 평소밖에 없더라.

사흘 뒤에 다 까먹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왜 그렇게 금방 잊는지 궁금해서 좀 찾아봤다. 에빙하우스라는 옛날 심리학자의 망각곡선이라는 게 나오는데, 한 번 외운 건 하루만 지나도 상당 부분이 날아간다는 얘기였다. 자료마다 몇 퍼센트가 남는지는 조금씩 다르게 인용돼서 정확한 숫자는 못 믿겠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몰아서 넣은 정보는 오래 안 남는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벼락치기로 넣은 건 대체로 잠깐 쓰는 단기 저장소에 머문다더라. 며칠 뒤 복습이 없으면 그냥 사라지는 거다. 게다가 시험 전날 잠까지 줄이면 오히려 기억이 자리를 잘 못 잡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잠 줄여가며 밤늦게 붙잡고 있던 게 실은 효율을 갉아먹고 있었다는 뜻이라, 좀 민망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 식탁에서 벌어진 일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저께 다 맞히고 오늘 멀뚱한 그 표정, 그게 원래 그렇게 되는 거였다. 아이가 기억력이 나쁜 게 아니라 방법이 그런 거였다.
성적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왜 그렇게 전날마다 몰아붙였을까. 아이 성적 올리려고 그랬다고 믿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냥 시험 전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불안해서 견디질 못했던 거다. 아이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불안을 달래는 의식에 가까웠던 셈이다.
그걸 인정하고 나니 방법을 바꾸는 게 오히려 쉬웠다. 그 단원 배운 날 저녁에 딱 10분, 며칠 뒤에 또 10분, 시험 전에 한 번 더 10분. 이렇게 짧게 여러 번 나눠보기로 했다. 몰아서 한 시간 하는 것보다 나눠서 짧게 자주 하는 게 낫다는 근거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도 나도 덜 지쳤다.
그리고 하나 더. 문제집을 눈으로만 훑게 하지 않고 책을 덮은 다음 “오늘 배운 거 엄마한테 설명해봐” 시켜봤다. 배운 걸 다시 읽는 것보다 스스로 꺼내보는 게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더라. 시험 효과라고 부른다는데, 이름이야 어쨌든 아이가 설명하다 막히는 지점이 곧 약한 데였다. 백지 한 장 주고 이 단원에서 기억나는 거 써보라고 하면, 어디가 비었는지 아이 스스로도 알아챘다.

틀린 문제는 모으지 말고 다시 만나게
전에는 오답노트라고 하면 틀린 문제를 예쁘게 옮겨 적는 건 줄 알았다. 근데 그 목적은 모아두는 게 아니라 같은 실수를 안 하게 만드는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옮겨 적는 건 접고, 틀린 문제에 표시만 해뒀다가 며칠 뒤에 그것만 다시 풀었다.
풀리기 전에 틀린 이유부터 물었다. 개념을 몰랐던 건지, 알면서 실수한 건지, 문제를 잘못 읽은 건지. 개념을 몰랐던 거면 교과서로 그 부분만 다시 잡고 비슷한 걸 한 번 더 풀었다. 실수였으면 그냥 웃고 넘겼다. 이렇게 며칠 간격을 두고 틀린 것만 다시 만나게 하니까, 짧게 자주 하기하고 스스로 꺼내보기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였다. 오답을 다시 풀리는 방식을 바꾼 이야기는 초등 오답노트를 다시 풀리게만 하다 방법을 바꾼 이야기에도 적어뒀는데, 결국 같은 방향으로 돌아왔다.
벼락치기 대 짧게 자주, 뭐가 어떻게 다른지 한 번 정리해두면 이렇다.
| 구분 | 시험 전날 벼락치기 | 짧게 자주·꺼내보기 |
|---|---|---|
| 하는 시점 | 시험 전날 몰아서 | 배운 날부터 나눠서 |
| 방식 | 다시 읽고 다시 풀기 | 덮고 설명·백지에 쓰기 |
| 며칠 뒤 | 대부분 잊음 | 상대적으로 남음 |
그래서 지금은
솔직히 아직도 시험 날짜를 못 챙겨서 허둥댈 때가 있다. 완벽하게 바뀐 것도 아니고,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또 문제집을 펼치려다 손을 멈춘다.
그래도 그저께 맞히고 오늘 멀뚱하던 표정은 확실히 줄었다. 이게 정답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몰아치기보다는 이쪽이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덜 미안한 방향인 건 알겠다. 나머지는 조금씩 더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