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거 왜 틀려.”
받아쓰기 공책을 내밀며 아이가 물었다. ‘꽃이’를 ‘꼬치’라고 써놓고, 빨간 줄이 그어진 걸 진짜 억울해했다. 자기 귀엔 분명히 꼬치로 들렸으니까. 나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시 열 번 써봐”라고 했다.
그게 우리 집 받아쓰기의 오랜 방식이었다. 틀린 단어 열 번, 많으면 스무 번. 손이 아프도록 쓰게 하면 다음엔 맞겠거니 했다. 근데 다음 주 시험지엔 또 다른 자리에서 빨간 줄이 그어져 왔다. 열 번 쓴 ‘꽃이’는 맞혔는데, 이번엔 ‘학교’를 ‘학꾜’라고 써온 거다.
열 번 쓰게 한 게 문제였나
한참을 그러다 문득 이상했다. 그렇게 많이 쓰게 하는데 왜 실력이 안 늘지. 찾아보니 여러 학습 자료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같은 단어를 열 번, 스무 번 반복해 쓰게 하는 건 단기 점수는 올려도 쓰기 자체를 싫어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 맞춤법 실력은 쓴 양이 아니라 ‘맞게 쓴 경험’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더라.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기계적으로 열 번 쓰면 손은 움직여도 “왜 이렇게 쓰는지”는 아이 머릿속에 안 남는다. 그러니 다음 주 다른 단어에서 또 틀린다. 우리 집이 딱 그 짝이었다.
애초에 왜 그렇게 자주 틀리나 싶어 더 들여다봤다. 한글 맞춤법 제1항이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돼 있다. 국립국어원 해설을 보면, ‘꽃이’를 ‘꼬치’로 적지 않는 이유는 ‘꽃’이라는 단어의 형태를 지켜야 ‘꽃’, ‘꽃을’, ‘꽃도’가 다 같은 ‘꽃’임을 알아볼 수 있어서다. 그러니까 아이가 자꾸 틀리는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한국어가 원래 “들리는 소리랑 쓰는 글자가 다른” 지점을 골라 시험을 보기 때문이었다.
억울해하던 아이 얼굴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귀엔 진짜 꼬치로 들렸을 테니까.

다 틀리는 게 아니라 몇 갈래로 틀린다
그다음에 안 게 더 도움이 됐다. 아이가 “다 틀린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틀리는 자리가 몇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초등 1학년 76명을 한 학기 추적한 국내 연구(초등학생의 받아쓰기 발달 양상)를 보면, 소리와 표기가 같은 규칙적인 단어는 9월에 이미 82%를 맞혔다. 반면 소리와 표기가 어긋나는 단어(‘꽃이→꼬치’, ‘학교→학꾜’ 같은)는 같은 시기 46%밖에 못 맞혔다. 2월이 돼도 64% 수준. 연구진은 1학년의 받아쓰기가 아직 교육과정 성취기준에는 못 미친다고 봤는데, 나는 그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됐다. 1학년이 다 못 맞히는 게 정상 범위라는 뜻으로 읽혔으니까.
그러니까 아이가 틀리는 건 거의 다 저 ‘소리와 표기가 다른 단어’에 몰려 있었다. 이미 잘 쓰는 규칙 단어까지 싸잡아 열 번씩 쓰게 한 게, 지금 와서 보면 아는 것까지 반복시킨 헛수고였다. 아니, 헛수고 정도가 아니라 아이가 받아쓰기를 지겨워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오류를 갈래로 보면 대체로 이렇게 나뉜다더라. 소리 나는 대로 쓰면 틀리는 단어, ‘앉다’·’많다’ 같은 겹받침 단어, ‘반드시’와 ‘반듯이’처럼 소리는 같은데 뜻이 다른 말, 그리고 저학년이 자주 놓치는 띄어쓰기. 이걸 알고 나니 아이 공책을 볼 때 “또 틀렸네”가 아니라 “아, 이번엔 겹받침에서 걸렸구나”로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랑 글자를 같이 짚어주기 시작했다
방법을 바꾼 건 그때부터다. 열 번 쓰게 하던 걸 그만두고, 틀린 단어 서너 개만 골라서 같이 소리 내어 읽었다.
‘꽃이’를 두고 “귀엔 꼬치로 들리지? 근데 원래 단어는 꽃이야. 그래서 꽃 더하기 이”라고 규칙을 놀이처럼 짚어줬다. 난독증 지도 칼럼에서 본 방식인데, 틀린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라고 하지 않는 게 핵심이었다. 대신 틀린 글자 바로 아래에 정답을 쓰게 하고, 다른 부분에 동그라미를 쳐서 눈으로 비교하게 한다. 지우개로 박박 지우는 것보다, 틀린 것과 맞는 걸 나란히 보는 게 아이한테 남는 게 있었다.
반복은 짧게, 자주로 바꿨다. 하루 5분에서 10분, 틀린 단어 서너 개만. 매일 10분이 주말에 몰아서 하는 30분보다 낫다는 자료가 많았고, 실제로 해보니 아이가 덜 지쳤다. 틀린 단어는 크게 써보고, 소리 내 읽고, 다음 날 다시 시험처럼 받아써보는 정도. 이 3단계를 며칠 돌리면 그 단어는 대체로 자리를 잡았다.
하나 더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아이가 책은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를 때 알게 된 것처럼, 받아쓰기도 결국 읽기랑 붙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올바른 표기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그림책 한두 문장을 하루 5분쯤 필사하는 것도 슬쩍 끼워 넣었다.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 받아쓰기 공책 옆에 두고 심심할 때 베껴 쓰게.
기대 시간선을 짧게 잡지 않은 것도 마음이 편해진 이유였다. 하루 5분에서 10분이 쌓여 두세 달 뒤에 달라진다는 게 현장의 일반적인 견해라니, 이번 주 100점을 만들려던 조급함을 좀 내려놨다.
빨간 줄 그어진 공책을 보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하다. 그래도 이제 아이랑 같이 그 줄 밑에 정답을 쓰고 동그라미를 칠 때면, 손끝이 아까보다 덜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