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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한자 교육,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이에서

슬기로운 초등교육

검색창에 “초등 한자”까지 쳤는데 그 뒤에 뭘 붙여야 할지 몰라서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시켜야 하나, 언제부터, 급수는, 학습지가 나은가 앱이 나은가. 물어보고 싶은 게 한 뭉텅이인데 손가락은 멈춰 있었다.

옆반 엄마가 아이 8급 땄다는 얘기를 지나가듯 하고 간 게 발단이었다. 우리 아이는 3학년인데 한자라는 걸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나 싶었다. 시켜야 하는 건가, 안 시키면 뒤늦은 건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한 채, 일단 찾아봤다.

학교에서 한자를 안 가르친다는 게 사실이었다

먼저 걸린 건 “요즘 학교에서 한자 배우죠?”라는 내 안의 전제였다. 우리 때는 국어책 옆에 한자 몇 개씩 있었던 기억이 흐릿하게 있어서, 당연히 지금도 그러려니 했다.

찾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초등학교 정규 교과에 ‘한자’ 과목은 따로 없다. 교육부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는 한자를 독립 교과서로 배우는 게 아니라 국어 같은 관련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 지도한다고 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국어 수업 안에서 어휘를 익히거나, 학교에 따라 방과후 한자반으로 스며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옆반 아이가 8급을 땄다는 건 학교 수업이 아니라 따로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나 혼자 “우리 아이만 학교에서 뭘 놓쳤나” 초조해했던 건데, 애초에 학교에서 다 같이 배우는 과목이 아니었던 거다. 이 지점을 알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한자를 알면 단어의 뜻이 풀리는 예

시키자니 독서가 낫다 하고, 말자니 어휘가 걸리고

정작 헷갈린 건 “그래서 시켜야 하나”였다. 찬성과 반대가 둘 다 그럴듯했다.

시키는 쪽 명분은 어휘력이다. 우리말 어휘 상당수가 한자어라, 한자의 뜻을 알면 처음 보는 단어도 뜻을 짐작할 수 있다는 거다. 광합성이 빛 광, 합할 합, 이룰 성이라는 걸 알면 단어가 그냥 외워야 할 덩어리가 아니게 된다. 교육 웹진 민들레의 한자교육과 문해력 글을 보면, 한자어휘가 늘면 고유어를 분별해내는 부가 효과까지 있다고 짚는다. 읽고 나서 고개는 끄덕여졌다. 우리 아이가 “선분이 뭐야” 하고 물었을 때 나도 뜻을 풀어 설명하다 막혔던 게 생각나서였다.

반대쪽도 만만치 않았다. 주간한국에서 계승범 서강대 교수는 문해력 문제를 한자 부족으로 곧장 연결하는 건 과하다고, 문해력은 결국 얼마나 읽고 사고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어휘력을 높이려면 한자를 따로 배우기보다 독서가 훨씬 효율적이라는 견해도 여러 곳에 공통으로 나온다. 낱말을 언어생활과 독서로 겪어보지 못해 생기는 문제이지 한자를 안 배워서가 아니라는 거다.

양쪽을 나란히 놓고 보니, 두 말이 정면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자를 시켜야 어휘력이 는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서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결국 많이 읽고 뜻을 궁금해하는 습관이 먼저고, 한자는 그 습관에 도구 하나를 얹는 정도였다. 마침 얼마 전에 책은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를 때 알게 된 것을 쓰면서 비슷한 결론에 닿았던 터라, 이번에도 어쩐지 같은 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뭘로 시키나 — 급수표를 열어봤다

그럼에도 궁금한 건 남았다. 시킨다면 언제부터, 뭘로.

시작 시기는 소스마다 “빠를 필요 없다”와 “흥미 생기면 언제든” 사이에 있었다. 해나 달, 구름처럼 사물을 인지할 무렵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억지로 저학년에 급수부터 몰아붙이면 역효과라는 뉘앙스도 공통이었다. 정리하면 몇 살보다 아이가 부수나 글자 모양에 재미를 붙이는지가 시작 신호에 가까웠다.

급수는 한국어문회가 주관하는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이 대표적이다. 위키백과에 정리된 배정 한자 수를 보면 8급이 50자, 7급 150자, 6급 300자, 5급 500자다.

급수 배정 한자
8급 50자
7급 150자
6급 300자
5급 500자

8급은 미취학생이나 초등학생의 학습 동기 부여용 급수라, 50자짜리를 떼며 “나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주는 데 방점이 있다더라. 학원이나 교재에서 흔히 권하는 기준으로는 저학년이 8~7급, 고학년으로 갈수록 6~5급 정도인데, 이건 사설 기준이라 딱 정답은 아니다. 검정 기관도 한국어문회 말고 여럿이라 급수 체계가 조금씩 다르다. 초등 단계에서 급수의 생기부·입시 실익은 크지 않고 성취감이 주목적이라는 게 여러 소스의 공통된 온도였다.

방법은 재미가 대전제였다. 만화나 영상, 게임형 앱으로 부담 없이 시작하라는 쪽과, 급수 교재로 매일 조금씩 반복하며 습관을 들이라는 쪽이 있었다. 앱은 게임화로 흥미가 붙지만 앱마다 편차가 크고, 학습지는 꾸준함에 강하지만 부모가 옆에서 봐줘야 하는 부담이 있다. 어느 하나가 정답이라기보다, 아이 성향에 맞는 걸 몇 개 체험해보고 고르라는 결론으로 소스들이 모였다.

여기서 잠깐 멈칫했다. 급수표까지 열어놓고 어느 앱이 낫나 비교하던 나를 보니, 정작 우리 아이가 한자에 재미를 붙이는지는 아직 한 번도 안 물어봤더라. 순서가 반대였던 거다. 도구부터 고르고 있었지 아이 반응부터 본 게 아니었다.

한자 시작 전 급수표보다 먼저 볼 것

그래서 오늘은 급수표를 덮고, 저녁 먹다가 “光이 무슨 뜻일 것 같아” 하고 슬쩍 물어봤다. 아이가 “빛?” 하고 답하는 걸 보고, 급수는 나중 일이겠다 싶었다. 설거지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