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분 학원비 결제 안내 문자가 왔다. 수학학원. 금액을 한참 보다가 결제 버튼 대신 달력을 열었다. 초등 학원 그만두기를 두고 몇 주째 미적대던 참이었다.
요즘 아이는 수학학원 가는 날이면 가방 싸는 속도가 반으로 줄었다. 현관에서 신발 한 짝만 신고 한참 앉아 있다가 나간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정해둔 게 있었다. 그만둘 거면 낸 달은 끝까지 채우고, 겨울방학 즈음에 깔끔하게 끊자. 학원비는 한 번 내면 끝이니까 그게 손해 안 보는 길이라고 믿었다.
학원비 환불 기준, 날짜가 아니라 수업 시간이었다
결제 전에 뭐라도 확인해보자 싶어서 ‘학원비 환불 규정’을 검색했다. 학원마다 알아서 정하는 건 줄 알았는데, 법에 정해진 기준이 따로 있었다.
찾기쉬운 생활법령정보를 보면 학습자가 본인 의사로 수강을 포기한 경우도 교습비 반환 사유에 들어가고, 학원은 그 사유가 생긴 날부터 5일 이내에 돌려줘야 한다. 아이가 그만두겠다는 것 하나로 충분하다는 얘기다. ..몰랐다. 여태 그냥 날린 돈이 있었나 잠깐 세어볼 뻔했다.
얼마를 돌려받는지는 학원법 시행령 별표 4 교습비등 반환기준에 나와 있다. 교습기간이 한 달 이내일 때는 이렇다.
| 그만두겠다고 한 시점 | 돌려받는 금액 |
|---|---|
| 수업 시작 전 | 낸 금액 전액 |
| 총 교습시간 1/3 지나기 전 | 낸 금액의 2/3 |
| 1/3 지난 뒤 ~ 1/2 지나기 전 | 낸 금액의 1/2 |
| 1/2 지난 뒤 | 돌려받지 않음 |
여러 달 치를 한꺼번에 냈다면 그만두는 그 달만 위 기준으로 계산하고, 아직 시작 안 한 나머지 달은 전액 돌려받는다.

눈에 걸린 건 ‘총 교습시간’이라는 말이었다. 날짜가 아니라 그날까지 지나간 수업 시간으로 따진다는 거다. 아이 학원은 주 2회라 한 달에 여덟 번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세어봤다. 두 번 듣고 말하면 3분의 2, 세 번 듣고 말하면 절반, 네 번을 넘기면 한 푼도 없다.
낸 달은 어차피 낸 거니까 채운다는 계산. 그런데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다. 수업이 절반 넘게 지나간 다음에나 맞는 얘기지, 마음이 월초에 이미 기울었다면 말 꺼내는 날짜가 곧 돈이었다.
‘중도 환불 불가’라고 써둔 안내문도 있다던데, 법무법인 도모의 법률 해설에 따르면 법정 기준보다 불리한 약정은 효력을 갖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교재비 공제 여부도 해설 수준이라 참고로만 적어뒀다. 말은 전화보다 문자처럼 기록이 남는 쪽으로. 학원이 신고한 교습비는 나이스 학원·교습소 정보에서 볼 수 있고, 다툼이 생기면 관할 교육지원청이나 1372 소비자상담센터로. 쓸 일 없길 바라면서.
싫은 건 학원이 아니라 숙제였다
환불 계산을 다 해놓고 나서야 정작 제일 먼저 물었어야 할 걸 안 물어봤다는 게 생각났다. “학원 옮길래?”가 아니라 “왜?”를.
저녁 먹고 슬쩍 물었다. 아이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한참 있다가 “선생님은 좋은데.. 숙제가 너무 많아.”라고 했다. 수업이 싫은 게 아니었다.
학원 옮기기를 고민하는 부모에게 주는 글들을 몇 개 찾아봤다. 대부분 학원이나 학습관리 업체 쪽에서 쓴 거라 걸러 들었지만, 공통으로 먼저 가르라는 게 있었다. 수업이 안 맞아서인지, 힘들어서 피하고 싶은 건지. 피하고 싶은 게 이유면 학원만 바꿔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거다. 흠. 이건 좀 뜨끔했다. 숙제가 많다는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올린 게 ‘숙제 적은 학원 어디 없나’였으니까.
옮겨야 할 신호로는 아이 이해도와 상관없이 진도만 나가는 경우, 상담 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말고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는 경우, 반 수준이 아이와 너무 안 맞는 경우를 꼽더라. 문제가 아이 쪽이 아니라 학원 쪽에서 확인돼야 옮길 이유가 된다는 말이다. 다닌 지 두 달이 안 됐으면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다.
우리 아이 경우를 대보니 진도 확인은 해주는 편이고, 반도 대충 맞는다. 걸리는 건 숙제 양 하나. 그건 옮길 이유라기보다 물어볼 거리에 가까웠다. 등록 전에 뭘 물어볼지는 초등 학원 상담, 등록 전에 물어봐야 할 것들에 적어둔 적이 있는데, 그 목록을 다니는 중에 다시 꺼내 쓸 수도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참, SBS 스페셜 ‘체인지-학원 끊기 프로젝트’에 나온 초5 아이도 반항의 이유가 학원 숙제랑 엄마 숙제 양이었다더라. 엄마 숙제 쪽은 내 몫이다.

옮기면 바로 나아질 줄 알았다
솔직히 아이 친구가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솔깃했던 적도 있다. 거기 가면 좀 낫지 않을까.
그런데 학원을 옮기면 새 학원은 아이 상태를 처음부터 다시 본다. 레벨테스트 보고, 반 배정받고, 진도 맞추는 데 보통 1~2개월이 걸린다고 학원 쪽 글들이 입을 모은다. 그동안 이전 학원에서 쌓던 흐름은 잠깐 멈춘다. 그러니 새 학원 첫 한두 달 성과로 또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옮기는 것도 공짜가 아니었구나. 돈 말고 시간으로 내는 값.
시기는 방학이 가장 무난하고 시험 3~4주 전은 피하라는 식인데, 주로 중학생 기준이다. 초등은 내신 시험이 없으니 ‘언제’의 제약이 느슨한 편이라, 결국 남는 건 두 가지였다. 그만둘 거면 월초에 말하기, 옮길 곳의 새 반이 언제 열리는지 미리 물어보기.
작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를 담은 정책브리핑 발표를 다시 보니 초등 사교육 참여율은 84.4%로 줄었는데, 다니는 아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1만 2천 원으로 오히려 늘었더라. 개수는 줄이고 남긴 곳에 더 쓰는 흐름. 끊을 곳과 남길 곳을 가르는 고민이라 초등 학원 개수, 몇 개까지가 적당한지 세어보다가와 초등 사교육비, 남들은 얼마 쓰나 세다가 우리 집 기준을 다시 잡았다를 다시 열어봤다.
11월 첫 수업 전까지로 정했다
그날 밤 아이랑 다시 얘기했다. 바로 “그래, 그만두자”도 아니고 “조금만 더 참아”도 아니게. 오마이뉴스에 실린 한 시민기자의 글에서 봤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부모가 혼자 정해버리기보다 서로 한 발씩 물러서 합의해보는 경험 자체가 아이한테 남는다는 것.
그래서 정한 건 이렇다. 10월은 다니면서 숙제 양을 학원에 한번 상담해보기. 그래도 버거우면 11월 첫 수업 전에 다시 정하기. 그리고 집에서 내던 연산 숙제는 오늘부터 절반으로. 아이는 마지막 말에 제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비는 한 달 치만 결제했다. 몇 달 묶어 내면 깎아준다는 안내가 있어도 이번엔 넘겼다. 11월분을 내고 나서 마음이 바뀌더라도 첫 수업 전에만 말하면 전액이다. 여기까지 계산해두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현관에 굴러다니던 학원 가방은 아이 방 문고리에 걸어뒀다. 목요일이 수학 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