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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단짝, 한 명한테만 매달리는 게 걱정이었는데

슬기로운 초등교육

작년 이맘때만 해도, 학교 갔다 와서 누구랑 놀았냐고 물으면 매번 다른 이름이 나왔다. 오늘은 이 애, 어제는 저 애. 그런가 보다 했다.

요즘은 딱 한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 때문에 운다.

“○○가 오늘 나랑 안 놀고 다른 애랑 놀았어.” 가방을 툭 내려놓으면서 그 말을 하는데 목소리가 축 처져 있었다. 초등 단짝이라는 게 이렇게 애를 울리는 거였나 싶었다.

한 명한테만 매달리는 게 자꾸 눈에 밟혔다

처음엔 좋았다. 늘 붙어 다니는 친구가 생겼다니까.

근데 시간이 지나니 좀 걸렸다. 쉬는 시간에도 그 애만 찾고, 그 애가 다른 친구랑 놀면 하루 종일 그 얘기다. 친구가 많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한 명한테만 걸어두면 그 애가 이사라도 가는 날엔 어쩌나. 3학년이면 사회성이 자리 잡을 때라는데 다른 애들은 우르르 몰려다니고, 우리만 외길인가 싶어서 솔직히 좀 조급했다.

초등 단짝, 이 나이엔 원래 이렇게 큰다더라

찾아보다가, 내가 순서를 거꾸로 알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한 명한테 매달리는 게 사회성이 부족한 신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관계를 하나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쪽에 가까웠다.

발달심리학자 로버트 셀만은 아이들이 우정을 이해하는 방식이 나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바뀐다고 봤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지금 나랑 같이 노는 애”가 친구다. 그러다 8~9세 무렵부터는 서로에게 기대하고, 서로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관계로 넘어간다. 이 시기엔 질투와 소유욕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특징이라는 거다. 친구가 다른 애랑 걸어가는 걸 보고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 단계 아이들한테는 흔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가 다른 애랑 놀았어”라고 우는 건, 관계가 망가진 게 아니라 관계를 진하게 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 셈이었다. 읽고 나서야 어깨에 걸려 있던 게 조금 내려갔다.

자란다 육아 칼럼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봤다. 다양한 친구와 두루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소수와 깊게 가는 걸 편해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 특정 친구와의 친밀함이 안정감과 소속감을 준다는 거였다. 집착처럼 보이던 게 꼭 나쁜 신호는 아니라는 말에, 아이 성향을 문제로만 보던 내가 좀 멋쩍어졌다.

나이대별 우정 변화

속상해서 왔을 때 내가 하던 말부터 틀렸더라

문제는 나였다. 아이가 속상해서 오면 나는 늘 이렇게 받았다. “그럼 다른 애랑 놀면 되지.”

해결해주고 싶어서 한 말인데, 아이 입장에선 네 마음은 별거 아니라는 소리로 들렸던 것 같다. 그 말을 하면 아이는 대꾸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 친구관계를 다룬 자료를 보면, 친구랑 부딪히고 온 아이를 다그치거나 부모가 나서서 상대 아이를 탓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어릴 때 싸움은 자주 나지만 또 쉽게 풀리기도 하니까. 먼저 할 일은 딱 하나, 감정을 알아주는 거였다. “그럼 다른 애랑 놀면 되지”가 아니라 “많이 속상했겠다” 가 먼저. 판단이고 조언이고는 그다음에 해도 안 늦는다는 걸, 나는 애를 몇 번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그래서 요즘은 순서를 바꿔봤다. 왜 그랬는지 캐묻지 않고 “그랬구나, 속상했겠네”부터 꺼낸다. 그러면 신기하게 아이가 그다음 얘기를 스스로 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은 자기도 다른 친구랑 놀고 싶었는지. 잘 안 되는 날도 있지만.

속상할 때 건네는 말

친구 수를 세고 있던 건 나였다

돌아보면 나는 계속 숫자를 세고 있었다. 몇 명이랑 노는지, 단짝이 몇인지.

성남 지역 초등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 국내 연구를 보면, 아이의 친구관계 질을 좌우하는 건 친구 수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푸느냐였다. 공감할 줄 알고, 다툰 뒤 풀어내는 방법을 아는 아이가 결국 관계를 잘 이어갔다. 친구를 많이 만드는 기술보다, 틀어졌을 때 다시 다가가는 힘이 핵심이었던 거다.

그 문장을 읽고 내가 봐야 할 게 바뀌었다. 우리 아이가 친구가 몇인지가 아니라, 오늘 속상했던 걸 내일 어떻게 넘기는지. 그걸 보기로 했다.

물론 마냥 지켜만 봐도 되는 건 아니다. 아주심리상담센터 자료에서는, 다른 친구와는 아예 놀려고 하지 않거나 작은 거절에도 오래 무너져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면 좀 더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짚는다. 반대로 친구가 아예 없어 보여서 걱정될 때는 상황이 또 다른데, 그 얘기는 혼자 있는 것 같은 아이를 어디까지 걱정해야 하나에 따로 적어뒀다. 단짝 다툼이 은근한 따돌림처럼 번지는 낌새라면, 그때는 학교폭력 신호 쪽을 먼저 살피는 게 맞고.

그런 신호가 아니라면, 지금 우리 집은 급할 게 없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단짝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건 이 나이엔 그냥 지나가는 결일 수도 있으니까.

○○아, 오늘 그 애가 또 다른 애랑 놀아도 괜찮아. 집에 오면 왜 그랬냐고 안 물어볼게. 속상했겠다고 먼저 말해줄게. 그거면 일단 됐다.